아침노을 -4 -useless writings

“후, 다 끝냈다아아....”

컴퓨터 앞에서 소녀는 안경을 벗은 후 눈을 슥슥 비빈 후, 그 가느다란 팔을 쭉 뻗으면서 기지개를 켰다. 그 모습을 TV를 보다가 슬쩍 바라본 그는 이틀에 한번 꼴로 보는 모습이지만 무심코 중얼거렸다.

“또 웹 관리냐...”
“‘또’라니 그럼 난 니가 알바하러 갈 때 ‘또’ 편의점 간다고 해줄까?”

순간 나온 말에 그제야 실수했다는 것을 깨닫고 아차 싶었다.

-이것이 외부활동이 사실상 불가능한 하얀 소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아르바이트.

웹사이트의 게시판 몇 개를 2-3일 꼴로 24시간 감시하는 어찌 보면 편한 아르바이트일수도 있지만 소녀에게 있어서는 그것마저 힘에 겨웠다. 그것을 증명하는 건 아마 눈 밑에 짙게 깔린 다크서클이 아닐까. 

“피곤해 보이는데 누워서 좀 자라.”
“시끄러워. 바카스 너무 마셔서 한동안 잠도 못자.” 
“대체 몇 병을 마신 거냐.”
“6병.”
“...그러다 심장마비로 훅 간다?”

그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컴퓨터를 끈 후 비틀비틀 일어나서 냉장고로 간 후 박스에 남아있던 마지막 한 병을 집어서 단숨에 뚜껑을 연 후 들이키면서 맥주라도 거하게 원샷한 중년 아저씨 마냥 크-하는 소리를 내며 피로와 평소의 쾌활함이 섞여서 어딘가 어중간한 느낌의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.

“이걸로 7병 째.”
“야... 사람이 걱정하면 좀 들어라...”
“그래도 안 마셔두면 뭔가 허전해.”
“사흘에 한번 꼴로 바카스가 한 박스씩 여자가 홀랑 마셔서 사라지는 집은 아마 여기 밖에 없을 거다.”
“아무렴 어때. 안 죽으면 그만이지.”
“...카페인 과다섭취하면 한 방에 훅 간다니까.”
“흥, 당장 안 죽으면 괜찮은 거라구.”
“야...”

금세 피로를 어느 정도 회복한 듯 다크서클이 깔린 표정으로 입을 삐죽이는 것을 보면서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.

ㅡ저러다가 이전처럼 쓰러지면 곤란한데.

사실 그리 오래전도 아니고 불과 3주일 전에 저렇게 팔팔하게--아마 그때는 바카스를 하루에 12병 들이켰다던가. 지금 생각하면 안 말린 자신이 정신 나간 것 같았다.--말하다가 픽 쓰러져서 이틀을 꼬박 잠자듯 기절했던 것을 목격했던 그로써는 영 걱정될 수밖에 없었다.

“또 그 때 그 일 때문이야? 내가 무슨 붕어대가리도 아니고. 그만큼 안 마셨으니까 걱정 말라구.”

‘걱정이 왜 그렇게 많아’라면서 추가로 쏘아 말한다. 

ㅡ이런, 앞으로 관심을 좀 적게 가져줘야 하나.

이런 엉뚱한 생각을 하면서 머리를 긁적이는 사이, 소녀는 어기적거리며 다가온 후 그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. 자주 이랬기에 많이 익숙해져서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리던 와중 옆에서 느닷없이 들려온 질문에 그는 멈칫하고 말았다.

“넌 날 어떻게 생각해?”
“응?”

순간 멍청한 말이 튀어 나온다 평소 같으면 ‘너 바보냐?’라는 말을 날렸을 터지만 이번에는 어쩐지 그런 말 대신 그냥 질문을 반복한다.

“날 어떻게 생각해?”
“글쎄..”

난감한 질문. 사실 초기에는 ‘성격 더러운 소녀 동거인’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지만 근 1년 반을 넘게 서로 투닥거리며 이런 말 저런 말, 이런 일 저런 일을 겪으면서 최근 들어서는 그다지 저 질문에 대한 답에 해당하는 소녀에 대한 그의 인식을 그리 깊게 생각해둔 편이 아니었다.

“왜 그렇게 뜸을 들여? 그리 어려운 질문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.”
“어떻게, 라고는 해도... 뭐랄까 근 몇 주간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네.”
“바-보.”

그가 한 대답으로 날아오는 간단한 한 단어. 그렇게 말하면서 소녀는 그의 어깨에 넌지시 머리를 기대왔다.

ㅡ답을 못 한다고 바보라니 좀 심한 건 아닐까.

언제부터인가 처음에는 그저 아니꼬운 동거인으로 생각했던 소녀가 그냥 두면 깨질 것 같은 위태로운 상태로 바뀌어 보이게 된 것은 확실하다. 하지만 알바와 각종 스트레스 때문인지 그렇게 생각하게 된 사건이 도통 기억이 안 나고 있었다. 하지만 곧 그 애매한 기억은 머리를 기댄 소녀가 입을 열면서 다시 퍼즐 맞춰지듯 끼워지기 시작했다.

“기억하려나, 내가 여기에 온 후에 처음으로 쓰러졌을 때.”
“아아, 아마 화장실 앞에서 쓰러졌던가.”
“그 때 말이야, 사실 난 니가 119를 부를지 생각도 못 했다?”

의외의 말. 뭐 지금 생각해보면 확실히 소녀가 그렇게 생각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. 그래도 여전히 입으로 직접 들을 줄은 몰랐기에 뭐라고 딱히 답변할 수가 없었다.

“뭐 그대로 못 일어날 것도 무서웠지만 이런 짓 저런 짓도 당할까봐 무섭기도 했고.”
“...사람을 짐승취급 하냐.”
“응, 그 때는 그랬지 뭐.”

‘내가 그 때 널 믿을 것처럼 보였었어?’라는 말이 추가로 날아오자 다시 뭐라 할 말이 없어진다.

ㅡ확실히 그 때 날 믿는 눈치는 아니었지.

멋쩍은 듯 말을 못 잇는 사이 소녀는 가만히 있다가 마저 입을 열었다.

“뭐, 그런데 그 때 응급실에 보내 준 이후에도 쭉 지켜보니까 말이야 내가 잘못 생각했다는 걸 알겠더라.”
“응? 뭐가?”
“짐승이 아니라 넌 지상최강의 바보였다는 걸 안거지 뭐.”
“어이...”
“왜 맞잖아, 이 바보.”
   
말에는 장난기가 어려 있다. 확실히, 그 때와는 변했다는 것을 이제야 새삼 실감한다. 사실 이런 걸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으니 제대로 실감한 건 오늘이 처음이겠지. 그 말이 나온 후 근 5분 간 TV소리만 남은 채 두 사람 사이에는 침묵이 내려깔렸다. 그가 다시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릴 즈음, 소녀는 작은 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.

“...그래도 말이지, 바보라곤 해도 기댈 곳이 있으니 편하다.”
“응?”
“...앞으로도 쭉 내가 이렇게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되 달라고 이 바보야.”

아까까지와는 다르게 어째 기어들어가는 투의 부끄러움이 섞여 있는 말투. 고개를 돌려보자 소녀는 눈길을 돌린 채 새하얀 얼굴이 확 눈에 띌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좀 빨갛게 변해있었다. 그제야 그 말의 의미를 딱 파악하고 뭐라고 그가 답하려던 순간, 소녀는 벌떡 일어났다.

“아, 피곤하네. 좀 자러 들어간다.”

‘나중에 알바 잘 갔다 오고’라고 덧붙인 후 소녀는 빠르게 방으로 들어간 후 문을 탁 닫았다. 소녀는 방에 있는, 자기보다 조금 더 긴 매트릭스 위에 누운 후 얼굴을 푹신한 베개에 반쯤 파묻었다.

ㅡ내가 미쳤지이... 그런 말을 하다니이...

피로회복제를 과하게 마셔서 버틴 까닭에 반동으로 맥이 탁 빠지는 피로가 침대에 눕자마자 몰려왔지만 그래도 생각은 아직까지 맑다. 여전히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 살짝 문을 바라보던 소녀는 작게 중얼거렸다.

“...사실 말 안했어도 이미 그 녀석은 알고 있었을 텐데.”
ㅡ바보같이 말해버렸네.

그렇게 잠깐 말한 후 침묵하다가 소녀는 이불을 슥 당겨서 덮었다.

ㅡ뭐, 자고 일어나면 그 바보도 잊어놓으려나아...

그것을 마지막으로, 이내 방에는 잠든 소녀의 새근새근 숨소리만 조용히 울려 퍼졌다. 문에는 요 며칠 전 그와 함께 갔었던 아쿠아리움의 표가 테이프로 붙어져 있었다.   

 
 -:-:-

역시 이런 글은 저같은 잉여종자가 쓰기에는 무리인듯..



트위터